에디터 노트

"20대의 주거권 문제는 단순한 주거의 문제가 아닌 20대의 자유의 문제이다. 경제적 종속이 학생들의 자유를 억압할 것이다."

14년 전, ‘대학생 장시원’이 인터뷰에서 남긴 이 말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그에게 집이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닌, 우리가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습니다.

장시원 변호사는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거쳐, 현재는 법률사무소 여운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를 부르는 호칭은 수없이 바뀌었지만, 그의 시선은 늘 한 곳을 향합니다. 바로 '집 없는 청년들의 오늘'입니다.

지난 11월, 집보샘은 ’청년 주거 문제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기 위해 장시원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과거 ‘대학생 장시원’이 외쳤던 청년 주거권의 이상향에 우리는 도달해 있을까요? 그의 시선을 경유해 다시 한번, 청년과 주거권에 관해 묻습니다.

part 1. 그때 그 시절 신촌의 방

Q1.

변호사님께서 대학생이던 당시 신촌의 주거 환경은 지금과 어떻게 달랐을까요? 그리고 그때 느꼈던 불편함이나 문제 의식이 민달팽이유니온을 시작하는데 어떻게 영향을 끼쳤나요?

A1.

저는 원래 서울 출신이지만, 대학 생활과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통학 시간과 막차에 대한 부담이 커서 자취를 결심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무악학사 고시동의 2인 1실에 살았는데 생활 패턴이 다르니 정말 불편하더라고요. 이후 신촌 기차역 인근 상가 주택으로 나왔어요. 보증금 500에 월세 33만 원짜리 방이었는데, 세탁기를 놓을 수 없는 구조라 일주일마다 빨래를 가방에 담아 본가로 가져가야 했죠. 부모님은 매번 뭐라도 챙겨 주시려 반찬을 가방에 담아주시고, 저는 빨래 때문에 짐이 무겁다고 투정을 부리고, 그런 웃픈 추억도 남아 있는 거 같네요.

처음엔 이런 개인적 경험을 통해 주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때 즈음 선후배들과 함께 총학생회를 준비해서 제가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되었거든요. 그때 저희의 공약이자 사회적 의제가 ‘반값 등록금’ 문제였어요. 그런데 대학생들이 꼭 등록금만으로 힘든 건 아니잖아요. 다른 공약은 더 없을까, 계속 고민을 해보니 지방에서 온 학생들을 중심으로 주거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때는 ‘대학생 주거 문제’라는 말도 잘 사용되지 않았거든요. 그냥 ‘힘들다’, ‘기숙사가 부족하다’ 이 정도 수준이었지, ‘대학생의 주거 문제’가 제대로 된 의제가 되어 있지 않은 때였어요. 그런데 제 선배들과 동료들이 본격적으로 그걸 ‘대학생 주거 문제’로 명명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는 그 용어가 ‘청년 주거 문제’로 넓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청년 주거권’이라는 말로 확장되었고요.

그렇게 총학생회 차원에서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루다 보니, 그 문제를 보다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학생회 차원에서의 노력도 좋겠지만, 학생회는 결국 1년이 지나면 맥이 끊기는 단체잖아요. 그래서 ‘민달팽이유니온’을 만들게 됐어요. 이름은 짐작하시겠지만, 민달팽이에게는 집이 없다는 데서 출발해서 만든 것이고, ‘유니온’은 마치 협동조합처럼 우리가 자치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구성원의 권리를 지키는 단체라는 의미에서 사용했어요.

Q2.

민달팽이유니온을 꾸려 나가시던 초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A2.

처음에는 사실 단체를 꾸리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같이 총학생회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의 권유로 제가 위원장을 맡게 됐던 거죠. 물론 제 전공이 사회복지학과고, 주거 문제에 관한 막연한 생각 정도는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주거권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는 막막함이 컸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냥 제 개인적인 경험, 그러니까 어렸을 때 반지하 집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본 것을 어떻게 사회적 의제로 해결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민달팽이유니온이 관심을 많이 받더라고요. 저희가 5월 5일, 그러니까 어린이날에 처음 민달팽이 유니온을 출범했는데요, 기자들에게 1년 내내 전화가 오더라고요. 많았을 때는 정말 하루에 몇십 통씩 전화가 오고요. 제가 라디오도 몇 번 나가고, TV에도 출연하고, 위원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연락이 계속 왔어요. ‘청년 주거 문제’, 그중에서도 ‘대학생 주거 문제’가 저희를 시작으로 의제화가 되니까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문제로 느껴졌나 봐요. 거기다 대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의미가 있어 보이기도 하잖아요.